■ 첫째이야기 -『소나무를 사랑한 노인』
조수삼(1762∼1849)은 중인 출신으로 호는 추재(秋齋)다. 신분상의 제약으로 벼슬은 하지 못하였지만 여항시단(閭巷詩壇)을 비롯하여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들과 시를 통해 교유한 조선 후기 정조와 순조연간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이글들은 여든 세 살 때 손자에게 필사케 하여 평생 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한 이 세상에서 소외된 다방면의 비주류들, 즉 뒷골목 사람들의 삶을 글로 옮겨 놓았다는데서 매우 흥미롭다.
특히 조수삼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나 담은 것이 아니고 비록 사소한 행동이라도 세상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모두 일흔 한사람의 삶을 모아 추재기이(秋齋紀異)로 묶었다.
그중에서 소나무를 사랑한 노인(愛松老人)과 소나무분재를 파는 사람(賣盆松者說) 이야기는 짧은 글이긴 하지만 우리 분재 고전의 귀중한 단서 이기에 별도로 뽑아 여기에 담아 둔다.
조씨 노인은 아명이 팔용(八龍)이었다. 늘 자신을 팔용이라 불렀기에 그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소나무를 몹시 사랑하여 백화산(白華山;경상도 문경과 충남 당진에 있다.)을 10여 년이나 두루 찾아 헤맸다. 그는 세 번 서리고 아홉 번 굽은 소나무를 얻어서 큰 화분에 심어 놓았다. 나뭇가지는 이무기처럼 늙어 비틀어졌고, 껍질은 이끼에 뒤덮였다.
손님을 마주해서 이렇게 자랑하곤 했다.
“조팔용이는 정승 판서의 녹봉도, 의돈(猗頓), 도주공(陶朱公)의 재산도 부럽지가 않소이다.
백화산에 틀어박힌
조팔용 노인은
평생을 살면서
정승 판서를 부러워 않네.
그대에게 묻노라.
“어째서 그렇게 만족한가?”
“세 번 서리고 아홉 번 굽은
소나무가 있기 때문이오,”
조팔용 노인은 분재를 길러 감상하는 것이 취미인 사람으로 특히 소나무 분재 마니아이다. 그에게 분재는 장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분재는 삶의 의미 그 자체이며, 정승과 판서의 권력도, 의돈과 도주공의 부유함도 부럽지 않다는 말에서 인생의 의미를 소나무 분재를 즐기는 데 모두 투사한 몰입의 인간형 임을 알 수 있다.
그런 태도는 이 시기 취미에 몰두한 인간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역자(안대희)는 조팔용 노인 같은 순수 분재 마니아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시에 분재 같은 취미 생활이 도회지 문화의 하나로 정착한 실태를 보여주는 조수삼의 또 다른 글『소나무 분재를 파는 사람(賣盆松者說)과 이옥의 백운필(白雲筆)에 실려 있는 매화 분재에 관한 글도 그 전문을 함께 소개 하고 있다.
산채목 소재를 분에 담다.(1984년 5월)
3 년후의 모습
산채 소재에서 22년 배양한 2006년 7월의 모습
(키- 50Cm , 줄기둘레- 24Cm)
키워 오면서 가지 배열을 고려 해서 중간에 2가지를 순접으로 보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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